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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힘< 손희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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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20회 작성일 21-01-12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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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한 시절, 다시 생각해보는 그림책의 힘

손희정

협회 부설 두근두근그림책연구소 대구지회장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은 그 자체로는 끔찍하지만 때로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뒷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020년은 생각지도 못한 질병 때문에 전 세계가 공포에 떤 한 해였다. 감염에 대한 우려는 물론, 경제적 추락과 일자리 상실로 모두의 생존은 벼랑으로 내몰렸고 사람들 사이에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언쟁, 훈계, 명령, 질책, 비난과 공격 따위의 부정적 감정이 오고 갔다. 그야말로 고통과 무기력과 상실의 계절이었고, 잃어버린 시간은 폐허 그대로 남았다. 더 기막힌 것은 이 상황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기운을 돋우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까. 어디서 위로와 평안을 얻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이 진흙더미에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뒷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그림책을 주목해본다. 곁에 있는 그림책을 집어 들고 다시 넘겨 읽으면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에릭 로만의 <Duck! Rabbit!>에는 페이지마다 오리처럼, 또는 토끼처럼 보이는 존재를 두고 프레임 밖의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이는 상황이 제시된다. 한 사람에겐 그것이 두말할 것 없이 오리로 보이고, 다른 사람에겐 재고의 여지도 없이 토끼로 보인다. 팽팽히 맞서는 두 사람의 간극은 여간해선 메워지지 않는다. 유일한 해법이라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밖에 없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화롭게 지낼 수 없을 테니. 결국, ‘서로 다른 시각, 너와 나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책 속에 들어 있는 셈이다.

  두 번째로, 그림책은 우리에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의 <왕짜증 나는 날>에는 페이지마다 곤란한 상황과 맞닥뜨린 등장인물이 나온다.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서 있는 날 지나가던 차량이 흙탕물을 튀겨 옷을 버린다든가, 좋아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든가, 키가 모자라 놀이기구를 혼자만 못 타게 된다든가 하는 식이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독자는 그들의 곤란에 공감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짜증스러운 상황의 집대성쯤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보다는, ‘힘들고 버겁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날도 있겠지만, 즐겁고 유쾌한 날들도 많을 테니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아라이 료지의 <버스를 타고>의 경우에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깃들어있지만 때로는 그 바람이 쉽사리 다가오지 않거나 우리를 배신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또 다른 삶의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말을 건넨다.

  세 번째로, 그림책은 우리에게 당신의 일상과 행복을 재정의해보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유타 바우어의 <Selma>에 보면 실의에 빠져 지혜로운 양을 찾아간 개가 등장한다. ‘지혜로운 양은 그에게 셀마라고 하는 또 다른 양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어떤 경우에도 삶의 본질적인 즐거움과 마음의 평안을 놓치지 않는 그녀의 삶에서 실의에 빠진 개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우르슐라 팔루신스카의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은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때로는 좀 게을러지라, 그러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될 테니라는 인생의 아포리즘을 던져준다. 두 작품 모두 코로나로 멈춰선 우리의 일상에서, 자가격리하듯 스스로 가두어두었던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

  네 번째, ‘연대와 협력의 미덕이 여러 그림책에서 발견된다. 잔 카를로 마크리의 <장벽>과 브리타 테켄트럽의 <빨간 벽>, 그리고 톰 클로호지 콜의 <장벽>은 나와 너,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벽을 허물거나 뛰어넘어 서로 마음을 열고 연대할 때 더 아름다운 세상이 열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뿐인가, 해리엇 지퍼트와 애니타 로벨의 <안나의 빨간 외투>는 새 외투를 갖고 싶어 하는 한 소녀를 위해 온 마을이 손 내밀고 협력하는 아름다움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서로가 외딴 섬처럼 고립된 오늘날의 상황에서, 친구나 이웃들과 직접 만날 수 없다 해도 정서적으로 더욱 긴밀히 협조하고 공감하는 것에 대한 절실한 필요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다섯 번째, ‘위기상황일수록 맥락을 바꾸면서 새로운 프레임으로 판을 다시 짜야 함을 그림책은 또한 우리에게 가르친다. 토미 웅거러의 <개와 고양이의 영웅 플릭스>개도 고양이도 아닌’, 또는 개면서 또는 고양이이기도 한주인공이 선명하게 이분화된 두 세계를 오가면서 편견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의 의미, 새롭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 필요성,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멋진 삶의 자세에 대해 역설한다.

  이렇게 보면 그림책 한 권 한 권이 우리에게 나침반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준다. 참 어려운 이때, 가까이에 있는 그림책을 집어 들어 가만히 읽어보면 좋겠다. 마음이 움직였다면 누군가에게 그 책을 소개하거나 선사해도 좋을 일이다. 그림책에는 공감과 소통을 끌어내는 힘이 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다시 살게 하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울분과 타인에 대한 비난을 중지하고, 유연한 마음가짐으로 삶의 여유와 품격을 회복하는 자세를 우리로 하여금 생각해보게도 한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뒷문이 별다른 것일 텐가,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하는 소박한 즐거움과 공감이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도종환 시인의 시 <도요새>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 “저기 새로운 대륙이 몰려온다/ 낯선 세상을 찾아가는 일이 우리의 일생이다/ 시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중략...)/ 생의 갯가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것/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을 수 있고 이전에도 없었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중략...)/ 우리가 도요새라는 것/ 생을 다 던져 함께 도달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숙제라는 것/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도요새의 일생이라는 것이다/ 저기 또 새로운 대륙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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